85년의 전통이 쌓아 올린 문화유산인 루체른 음악제는 올해도 어김없이 최고 악단과 연주진 캐스팅 그리고 풍부한 프로그래밍으로 – 올해 키워드는 « 호기심 » – 전세계 클래식 애호가들을 루체른 호숫가로 유혹했다.
오페라라는 쟝르를 위해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이 있다면, 그에 상응하는 교향악 축제로는 단연코 스위스 루체른 음악제를 꼽지 않을 수 없다. 여름 햇살에 환하게 빛나는 루체른 호수의 잔잔한 수면의 따스하고 달콤한 수증기가 심신을 편안하게 감싸주는 효능을 지녔다면, 최고의 음향으로 손꼽히는 루체른 KKL 콘서트 홀에서 울리는 기라성 같은 관현악단의 울림은 정신을 고양시키고 심리를 정화시켜주는 치유제 역할을 한다.
전통 고수와 자주적 운영
베를린 필과 더불어 세계 최고 관현악단의 양대 산맥을 이루는 비인 필. 그들은 해마다 전세계로 생중계되는 신년 음악회의 밝고 경쾌한 사운드로 우리에게 익숙하다. 1842년 창립된 비인 필은 트렌드에 쉽게 휘말리지 않는 전통 고수와 더불어 단원들이 스스로 객원 지휘자를 선발하고 직접 연주 프로그램을 짜는 등의 자주적 운영이 특징인데, 비인 오페라 연주자로 최소 3년 경력을 지녀야만 비인 필 입단 자격이 주어진다.
비인 필은 1877년에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 데뷔함으로써 처음으로 비인 이외 지역에서 연주한 바 있고, 1900년 구스타프 말러의 지휘로 파리 만국 박람회 기념 무대에 서기도 했다. 루체른과의 인연은 1957년 9월에 디미트리 미트로풀로스의 지휘로 슈만, 바버, 베토벤의 무대로 이루어졌다.

슈트라우스 « 영웅의 생애 » – 작곡가의 내적 갈등과 투쟁
첫 곡인 멘델스존 교향곡 3번 « 스코트랜드 »에서 다소 신중하던 현악 주자들의 보잉은 2부 슈트라우스 « 영웅의 생애 »에서 대담해지면서 대폭 증폭된 사운드 드라마를 전개했다. 슈트라우스가 아티스트로의 사명감을 깨닫게 되던 당시 그를 둘러싼 주변 환경에 대한 작곡가의 호기심이 반영된 교향시 « 영웅의 생애 »는 젊은 작곡가 스스로의 내적 갈등을 영웅의 투쟁을 통해 암시하고 있다. 여기서 (작곡가가 의도했던 원제는 « 영웅과 세상 ») 영웅이란, 스스로에 대한 예찬의 의미보다는 아티스트로 성장하는 자신을 둘러싼 주변과 투쟁하는 인물로서의 의미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슈트라우스는 « 영웅의 생애 »를 통해 화성적으로는 바그너의 악극 « 트리스탄과 이졸데 », 조성적으로는 베토벤의 교향곡 « 영웅 »의 영향을 (영웅 조성 E-flat major) 숨기지 않고 드러내고 있는데, 총 6개의 분리된 섹션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지만, 크게 4개 악장을 지닌 대규모 소나타 형식으로도 이해할 수도 있어 리스트 피아노 소나타의 영향도 감지된다.

극적 긴장감으로 펼쳐지는 영웅의 모습
인터미션 종료 벨이 울리기가 무섭게 무대로 들어서는 크리스티안 틸레만, 그가 지휘봉을 들자마자 악단은 첫 음을 강타한다. 다소 날 선 소리부터 예사롭지 않다. 오페라와 심포닉 무대에 두루 익숙한 비인 필 답게 서사적 전개가 리얼하다. 그 가운데 등장한 주인공 영웅은 바이올린 수석의 고밀도로 정제된 소리로 표현되었다.
영웅의 동반자의 초상을 묘사하는 부분에서 수석 바이올린 주자의 표현은 간드러지게 절묘하다. 그의 섬세한 활은 슈트라우스의 아내 폴린의 심리상태와 외양을 세밀하게 그려 나간다. 무대 뒤편의 트럼펫 소리로 영웅의 전투장이 암시되고 틸레만의 지휘봉은 그 가혹한 현장을 아방가르드한 아우성으로 표현한다. 마지막 섹션은 « 영웅의 생애 »의 명쾌한 결말이다. 슈트라우스가 그간 제시했던 온갖 테마들이 결말 부분에서 다시 등장하는데 비인 필과 틸레만은 대담하고 폭넓은 사운드 스펙트럼을 자랑하며 객석에 희망적인 집단 쾌감을 선사했다.

비인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Vienna Philharmonic Orchestra), 크리스티안 틸레만 (Christian Thielemann) 지휘
2024년 9월 6일, 루체른 KKL 콘서트 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Richard Strauss, 1864–1949) 영웅의 생애 Ein Heldenleben (A Hero’s Life), Op. 40
사진 : 루체른 KKL 콘서트 홀에서 리허설 중인 비인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음악 칼럼니스트 박마린
프랑스 공연예술 평론가 협회 회원, 하우스 콘서트 정규 기획과 더불어 클래식 아티스트/공연기획 컨설턴트로 활동하면서 한국과 프랑스의 클래식 전문 매체에 기고하고 있다.
